아기공룡 무신사 Baby Dinosaur MUSINSA
2024년 1월 4주차의 시작인 22일 오늘부터 24일까지 수도권 기준 최저기온 -18℃, 체감온도는 -20℃다. 국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은 -36℃, 미국은 -45℃를 기록하는 극한 날씨가 전 세계를 강타 중이다. 그런데, 국내 10번째 유니콘이자 기업 가치 3조 5천억 원으로 평가받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 역시 올겨울이 유달리 추운 모양새다(Baby Dinosaur MUSINSA).
무신사는 2019년 11월 시리즈 A를 시작으로 2021년 3월 시리즈 B, 2023년 7월 시리즈C(Series C)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국내 패션계와 이커머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무신사가 1,500명의 임직원과 1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닐 정도로 성장했다. 패션 혹은 신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많은 이라면 자연스레 무신사와 2000년대를 함께 했는데, 사실 아무도 예상 못했다 무신사가 이리 클줄은.
무신사가 패션 버티컬 플랫폼으로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성장해 공룡이 되었지만, 국내 전체 이커머스 시장으로 보았을 때는 아직 아기공룡이다. 네이버와 쿠팡이 양분하는 지금의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그 나머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혈투가 펼쳐지고 있다.
과연 무신사가 급격한 시장 변화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경쟁자의 출현에 잘 대응할지 다양한 환경을 풀어본다.
새로운 공룡 – 쿠팡
한 달 전인, 12월 18일 밤에 전해진 쿠팡의 온라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 인수 소식(Coupang acquire Farfetch)은 2023년의 국내 패션업계 소식 중 큰 이벤트였다. 로켓배송으로 국내 시장을 장악하며 쿠세권(쿠팡 주문 후 다음 날 물건을 받는 익일배송 가능 지역)이란 말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가정에 깊숙이 자리 잡은 쿠팡이 글로벌 럭셔리 플랫폼의 최강자를 집어삼켰으니까.
1년 전, 국내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3대장으로 불리던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이 합병을 논할 때의 기업가치가 각각 4,500억 원, 3,000억 원, 2,800억 원으로 총 1조 300억 원 이었다고 하니, 쿠팡의 파페치 인수가격 5억 달러(6,000억 원)는 그야말로 헐값에 불과하다.
현재까지는, 다수의 투자자에게 지적받던 국내 시장 한정이라는 한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성공적인 인수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온라인 점유율이 10%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내수용에 불과한 3사의 기업가치에 거품이 상당하다는 건 다소 부끄러운 현실이 드러났다.
쿠팡의 지난해 연 매출 26조 원 중 패션 카테고리는 10% 내외로 약 2.6조 원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번 파페치 인수가 큰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20년 패션 카테고리 플랫폼 C.에비뉴를 런칭했지만 악성 재고를 파는 수준에 불과했던 쿠팡이 명품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접수한 건 상당히 놀라운 성과다.
원래 있던 토박이 공룡 – 네이버
네이버도 오래전부터 패션 시장에 힘주어 왔다. 2018년에 리뉴얼한 스마트스토어는 중소 상공인의 온라인 진출을 돕는 가장 적합한 솔루션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다양한 성공 사례와 창업 열풍을 만들어냈다(네이버페이와 네이버톡톡은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2022년에는 지식쇼핑 카테고리 내에 패션타운을 론칭하여 신세계가 인수한 W컨셉을 입점시켰고, 2023년 최종 인수가격 약 1조 5,000억 원으로 미국의 C2C 플랫폼 포쉬마크(Poshmark)까지 품었다.
스탁엑스와 같은 C2C 서비스를 내세운 손자 기업 크림(KREAM)은 시장에 등장과 동시에 절대권력을 차지했고 지난해 말,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을 평가받으며 유니콘이 되었다. 리셀 시장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파트너 브랜드를 끌어들여 B2C 플랫폼으로 확장하며 독자적인 커머스 플랫폼의 노선으로 향했다. 이와 동시에 크림은 일본의 스니커덩크(SNKRDUNK)를 비롯해 아시아의 리셀 플랫폼에 여럿 투자하며 외연 확장과 성장 가능성을 심어놨다. 이번 달부터는 중고 스마트폰까지 거래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거침없다.
국내 온라인 비즈니스의 성공 신화를 기록한 네이버는 꾸준히 누적한 디지털 DNA를 바탕으로 신사업에 성공적으로 이식시키고 있다. 해외 사업도 예외 없이 동시다발적이다.
깨어난 공룡 – 온라인을 넘으려는 무신사
작년 11월 중순, 무신사 한문일 대표는 ‘무신사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함께 이루어진 미디어간담회에서 오프라인 진출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온오프라인 매출 비중을 50:50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사업 확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2022년 기준 패션 소매 판매액(대략 오프라인)이 133조 원, 온라인 쇼핑 판매액이 52조 원이니 2배 이상 큰 시장에서 무신사의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무신사가 온라인 패션 버티컬 플랫폼으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은 유효하지만 다양한 연령대와 불특정 다수를 맞이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을 이용한다는 거다.
무신사는 오프라인 전략의 무기로 PB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MUSINSA Standard)를(가성비를 넘은 지 오래고 스탠다드라는 이름이 함정이라는 평가받는다, 특히나 슬랙스 종류는 강추) 내세웠다. 편집샵 형태로 운영되는 무신사 홍대와 대구 매장에서는 제품의 QR 코드 시스템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같은 온오프라인 가격과 회원 혜택을 제공하고 매장 픽업 서비스까지 선보인다.
고정비 지출이 확실한 오프라인 매장 운영 방식과는 살짝 결이 다른 나름의 과감한 선택인데, 어쩌면 온라인 태생의 무신사로서 진정한 O4O(Online for Offline) 서비스의 시작은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2024년에만 30개가 넘는 무신사 오프라인 매장의 전국 확대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는데, 여기에서 누적된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향후 무신사의 성장에 중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방문객 분석과 동선의 흐름, 결제 기록까지 남겨지는 데이터는 온라인에서 수집할 수가 없으니까.
일본의 조조타운(zozo)을 롤모델로 삼으며 성장한 무신사는, 오프라인 성장으로의 롤모델로 워크맨(株式会社ワークマン/WORKMAN CO.,LTD.)을 택한 느낌이다. 작업복계의 유니클로로 불리며 일본 내 1천 개에 가까운 매장을 운영하고 낮은 가격에 고기능성과 품질을 담아낸 워크맨의 성공 사례는 어느 정도 참고할만하다.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을 내년 30개까지 늘리는 등 공격적인 오프라인 확장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무신사 스탠다드는 오프라인 매장을 5개까지 열 계획으로 편집숍 역시 내년 3~4월 성수에 세 번째 개점이 예정돼 있습니다.
한문일, 무신사 대표
물 건너온 공룡 – 계속되는 온라인 경쟁
신세계 그룹의 SSG닷컴은 글로벌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 ‘네타포르테(NET-A-PORTER)’와 ‘미스터포터(Mr. Porter)’의 해외직구 공식 브랜드관을 올 초부터 시작했다. 제휴를 통한 사업이고 이미 국내 직배송이 가능한 플랫폼 사업자라 직구족에게 큰 영향이 없겠지만, 대기업이라는 막강한 자본과 유통을 지녔으니 그 파괴력 무시할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 일본을 점령하고 패스트 패션이 아닌 리얼타임 패션을 선보이는 쉬인(SHEIN), 천원마트를 내세우며 물류대란과 함께 국내 물류 업계 매출의 효자로 등극한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테무(Temu)까지 국내 패션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의 해외 직구에 관한 관심은 계속 커지고 진입 문턱은 더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신사로서는 이들이 당장 위협적인 경쟁상대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시장 점유율과 매출 확대에 있어 신경 쓰이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성공을 맛본 상대는 다시금 목마르기 마련이다.
잘 커온 무신사
2023년 총거래액 4조 원을 돌파한 무신사는 국내 패션 버티컬 플랫폼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거래액 4조 원은 무신사와 29CM, 솔드아웃(soldout) 내에서 거래된 판매액을 집계한 기록으로, 교환/환불은 제외한 구매 확정 기준이다. 참고로, 휠라홀딩스 매출이 4조 원이고, 넥슨의 매출이 4조 원,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가 약 4조 원 수준이니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통계청,「온라인쇼핑동향조사」, 온라인쇼핑몰 취급상품범위별/상품군별거래액)를 살펴보면 2023년 1월~11월 사이의 패션 관련 거래액은 약 48조 원이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12월을 포함한다면 대략 50조 원이 넘을 것으로 본다. 무신사는 4조 원 매출의 시대를 열었으니 시장 점유율에서 6%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전체로 보면 예상외로 적다. 좀 더 높을 줄 알았다.
약 2주간 진행한 2023 무신사 블랙프라이데이는 어마어마한 3,083억 원의 매출을 만들며 전년 대비 44%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국내 패션계의 블랙홀로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실시간으로 누적 판매기록을 보여주는 방식은 ‘아니, 이게 말이 돼?’라고 할 정도로 놀라움을 선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확~ 올라간 숫자가 나름 재미있다.
아웃스탠딩이 기록한 2023년 패션 커머스의 MAU 결산에 따르면, 무신사는 2022년 평균 MAU 325만 2,000명에서 2023년 평균 MAU 393만 1,000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년 대비 연평균 MAU 21% 증가를 기록했는데, 어느 정도 규모화를 이룬 무신사가 성장률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니까 아기공룡(Baby Dinosaur MUSINSA)으로 잘 컸다. 그리고 무신사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뉴진스(NewJeans)’가 있다. 크아아~
아기공룡을 넘어설 수 있을까
거침없는 성장과 함께 2000년대를 지나온 무신사지만 2024년 올 한해 역시 쉽지 않다. 시장에서는 성장을 꾸준히 요구하고, 토박이 공룡 네이버와 새로운 공룡 쿠팡이 충돌하고, 물 건너온 공룡 알리, 쉬인, 테무까지 덤비고 있다. 언제든 밀리기 쉬운 환경이다.
슈퍼앱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보이는 데 사과문의 정석으로 불리며 전 직원 역사 교육까지 진행하던 무신사가 보여준 신뢰와 의젓한 모습을 다시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직이 빠르게 커지면서 겪는 어쩔 수 없는 성장통이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 조직의 성장과 체급 변화에 따른 근육 키우기가 그리 쉽겠나?
혹한기를 넘어 빙하기라 불리는 시장 상황 속에서 홀로이 버티고 있는 아기공룡 무신사(Baby Dinosaur MUSINSA)는 올겨울이 유달리 외롭고 춥다. ‘성장’이 아닌 ‘생존’만이 남은 환경에서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단단한 성장 전략과 조직력이 필요하다. 아무쪼록 파이팅 하시길.
피터팬이 되거나, 데카콘이 되거나
한때 장외주식거래에서 무신사의 주식은 1주당 최고 210만 원을 기록한 바 있다, 물론 거품이 상당했던 가격이라 보는데 요즘은 1주당 100만 원 선으로 거래되는 수준이다. 올 초, 조만호 의장이 임직원에게 1,000억 원 규모의 사재 주식을 증여했으니 유통 물량이 더 늘어나 장외거래의 활성화와 함께해온 직원과 성과를 나누는 모습을 만들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등 다양한 채널로의 확대와 영향력 증가는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도전의 모습은 시장에서 큰 환영을 받기 마련이며, 때론 큰 서사의 주인공을 만들어낸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지는 키워드 챗GPT와 A.I의 중심에 선 엔비디아(NVIDIA)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1년 사이 각 +399.50 USD(208.15%), +151.53 USD(62.47%)나 상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크림과의 경쟁으로 무신사의 아픈 손가락이 된 솔드아웃의 영업손실이 크다는 지적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봤으면 한다. 신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처지에서 크림 독점 구조는 국내 스니커즈 신에 좋을 게 없다. 아마 상당히 머리 아픈 문제고 이미 임계치를 벗어난 것으로도 보인다만.
터널은 때론 길지만 언젠가 끝은 나기 마련이다. 마무리는 에디터 로건의 말을 빌린다.
성장통의 전제는 성장이다. 즉, 지금의 체계가 성장을 위해서 도전을 받는 중이다. 여기서 그대로 성장을 멈추고 피터팬으로 남을지, 아니면 성장해서 데카콘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무신사에게 달려있다.
로건, 슈톡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