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파페치 인수 Coupang acquire Farfetch
12월 18일 밤 들려온 쿠팡의 온라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 인수 소식(Coupang acquire Farfetch)은 그야말로 깜놀이었다. 로켓배송으로 국내 시장을 장악 중인 쿠팡이 파페치를? 연계성 없어 보이는 두 기업을 함께 둔 그림은 생소하지만, 상당히 재미있다.
결론적으로 쿠팡의 선택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을 롤모델로하며 의도된 적자로 물류 유통망을 구축하고, 로켓배송(아기 가진 집에는 필수인)을 앞세워 이마트의 매출을 뛰어넘었다. 대한민국의 절대강자로 거듭나며 미국에 상장했고, 일본과 싱가포르와 대만 등 해외 진출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매출의 대부분은 국내로 한정되어 있다. 매출 대부분은 객단가가 낮은 식품 또는 생활용품이라는 것도 약점으로 평가받았다.
더 다양한 카테고리와 매출구조의 확대는 쿠팡으로서 당연한 순서다. 2020년 패션 카테고리 플랫폼 C.에비뉴를 런칭했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현재는 재고에 재고에 재고 수준이 된 브랜드 제품을 매우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에 구매할 수 있는 떨이 구매처 수준이다. 더 매력적인 플랫폼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파페치 about Farfetch
2008년 런던에서 탄생한 파페치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만, 여건이 부족했던 유럽 내 소규모 부티크를 파트너 셀러로 끌어들이며 사업화했다. 지금은 백화점과 브랜드까지 참여하여 1,400여 개 이상의 셀러가 활동 중이고, 390만 회원과 전 세계 배송이 가능한 명실상부한 글로벌 온라인 명품 플랫폼 1위다.
파페치는 명품을 비롯해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데 일반적으로 쿠팡의 제품보다 객단가가 높다. 대부분의 아이템을 일정 규격의 상자에 넣을 수 있는 형태라 이동이 편리하고 제품 매출액 대비 운송료가 저렴한 편이라 여러모로 이득이다.
쿠팡은 5억 달러(약 6,600억 원)로 파페치를 인수하면서 럭셔리 마켓과 글로벌 시장 진출, 객단가 문제까지 해결했다. 코로나 시기에 급성장을 기록하며 럭셔리 커머스의 미래라고 평가받은 파페치가 주가 당 70달러 이상을 기록하며 시가총액 260억 달러(33조 9천억 원)의 기업가치를 기록했던 걸 상기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2018년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파페치는 코로나 이후, 연이은 기업 인수 실패와 무리한 확장 덕에 내리막이 아닌 고공 하강에 가까울 정도로 망했다. 인원 감축이 이어지고 조직을 슬림화했지만, 한 주당 70달러 이상이던 파페치의 주가는 올 하반기 1달러 이하로 동전주 신세가 되었다. 딱 5년 만에.
그리고 쿠팡이 파페치 인수를 발표한 이틀 뒤인 12월 20일부터는 나스닥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되어 OTC(장외) 거래소에서 FTCHF로 상장되었다. 코로나 시기에 칭송받던 기업의 대 몰락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다. 덩달아 쿠팡의 주가도 하락했다.
파페치의 하락에 큰 일조한 창업자이자 CEO인 호세 네베스(José Manuel Ferreira Neves)와 함께한다고 했는데 어떤 결과를 만들지 궁금하다. 파페치를 이만큼 키운 것도 그이지만, 상장폐지를 만든 것도 그다. 시장은 과연 납득할까?
시장 상황은 그사이 빠르게 변했다. 소규모 온라인 비즈니스에 적합하고 대부분 스니커즈 스토어가 이용 중인 쇼핑몰 플랫폼 쇼피파이(Shopify)가 시장 점유율을 크게 차지하며 경쟁자가 되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리셀 플랫폼 스타디움 굿즈(Stadium Goods) 인수, 오프 화이트(OFF WHITE)와 앰부쉬(AMBUSH)를 소유한 뉴가즈 그룹(New Guards Group) 인수, 럭셔리 뷰티 소매유통기업 바이올렛 그레이(Violet Grey) 인수가 파페치 그룹의 매출 확대로 이어지지 않으며 휘청거렸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긍정적,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은 날벼락
무엇보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대단하다. 올해 1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한국이 지난해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한 나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인의 명품 구입액은 총 168억 달러(약 20.9조 원), 1인당 235달러(약 40만 원)라고 밝혔다. 이런 환경은 쿠팡의 파페치 인수에 더 긍정적 신호 중 하나다. 최고 매출이 나름 보장된,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는 안방 시장을 끼고 가는 것이니까.
국내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3대장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높은 인지도와 앱 접근성과 물류, 자본까지 갖춘 쿠팡이 명품 시장에 등장과 동시에 끝판왕으로 시장을 접수하는 모양새다. 올해 초, 3사가 경영 위기를 타개하고자 합병 가능성을 보이며 의논했지만, 최종 불발로 기록되었다.
이때 3사의 기업가치가 머스트잇 4,500억 원, 발란이 3,000억 원, 트렌비가 2,800억 원이었다고 하니, 쿠팡의 파페치 인수가격 5억 달러(6,000억 원)는 그야말로 헐값이다. 3사의 기업가치에 거품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더불어, 이들에 투자한 벤처 캐피털(VC)이 여럿 되던데 울상일 테다.
쿠팡 앱에 리셀 플랫폼이 등장할까?
조만간, 쿠팡 앱에서 스니커헤드에게 익숙한 리셀 플랫폼 스타디움 굿즈(Stadium Goods)가 입점하는 모습을 볼지 모른다. 그렇다면 크림(KREAM)과 솔드아웃(SOLDOUT)에 이어 플레이어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다.
앱 활성 고객 2천만을 기록 중인 쿠팡에 리셀 플랫폼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발을 좋아하는 이로서는 일방적인 크림 독주 체제에 약간의 틈이라도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큰 기대는 없다만.
참고로, 파페치는 스타디움 굿즈를 2018년에 2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쿠팡이 파페치를 인수(Coupang acquire Farfetch)하는데 5억 달러를 투자하니 스타디움 굿즈 2개 살 돈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고 잘 돌아가기까지 하는 럭셔리 플랫폼을 소유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재미난 건 쿠팡의 파페치 인수 소식 이후, 국내 언론은 ‘K패션의 세계화’로 우영미(WOOYOUNGMI)를 비롯해 더 많은 국내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희망회로를 돌리고있다. 그것도 하나같이 복붙 내용이던데 과연 그럴까? 정신 차리시라. 단순히, 국뽕 마인드로 기대하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쿠팡과 파페치의 미래는?
국내 시장은 평정했지만, 해외 진출에서 고전하는 무신사(MUSINSA)가 파페치를 인수했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다. 몸값 3조가 되었지만, 국내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면서 성장 한계가 다다르고 있다. 해외 기업 합병을 통한 글로벌 진출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쿠팡의 파페치 인수가 좋은 사례가 될지 모르겠다. 쉽지는 않다만.
쿠팡이 파페치 인수 이후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된다. 파페치의 시총이 1/100 수준이 되었고, 올 상반기 부채가 11.5억 달러에 달한다. 인수금액의 2배가 넘는 부채다. 시장은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양새지만, 우리로서는 쿠팡의 큰 그림을 알 수가 없으니 기대해볼 수밖에.
과연, 누가 쿠팡이 파페치를 인수(Coupang acquire Farfetch)하는 모습을 예상했던가? 주당 70달러 하던 파페치의 주식이 0.63달러를 기록할지 누가 예상했던가? 원래 우리 인생이 알 수 없음의 연속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법이다. 쿠팡이 글로벌 온라인 명품 시장을 국내 주도로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 이로써 명품 시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더 명확해질 테다. 쿠팡이 타 사업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도전을 이어온 만큼, 앞으로의 그림이 기대된다.
플랫폼의 시대, 빅 브라더의 시대는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중간은 없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휩쓸려버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