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의 역습 Price Strikes Back
사람들은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좀 다르게
무신사(MUSINSA)가 진행한 무진장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3천억 원 넘게 매출을 올렸다. 한국 패션 유통에서는 아마 최초이자 최고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 매출이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조금 더 기사를 살펴보자면 소비자는 더 많은 할인을 해주는 제품에 몰렸다는 소식이다. 단적인 예로 블랙프라이데이 때 전자기기 제품의 판매가 좋았다는데, 코로나 이후에 가장 소비가 부진했던 카테고리가 바로 전자기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모두 백화점 매출이 안 좋다는 것은 소비자가 큰 할인행사가 진행된 제품에만 눈길을 주었다는 신호다.
코로나 기간을 지나며 공급망 및 생산망 교란으로 인한 원자잿값, 운반비 등의 상승이 있었다. 이때 발생한 제품 원가 상승 요인을,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으로 전가한 브랜드는 월가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가격 인상은 소비자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부분이었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가격 인상에 대해서 소비자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기업이 전가했던 비용의 대가가 부메랑이 된 시점이다.
가격의 역습
코로나가 끝난 지금은 그 가격이 적절할까? 흔히 말하는 금리 인상과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구매력이 줄어가고 미래 경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전망하기에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나의 삶은 코로나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오른 것 같고 경기가 안 좋아 질 것 같다는 뉴스가 무성하다.
역시나 내가 사고자 하는 제품의 가격은 꽤 올라버렸다. 11만 9천 원 하던 나이키 덩크가 13만 9천 원이 되었으며, 12만 9천 원 하던 페가수스 러닝화가 이제는 14만 9천 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보메로는 15만 9천 원에서 이제는 18만 9천 원으로 거의 20만 원 돈이다.
그러면 가격을 내려야 할까? 답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가격을 내리는 순간 해당 브랜드에 매우 악영향을 미친다. 브랜드보다는 제품이나 가격 중심의 제품들(ex. 이마트 노브랜드, 코스트코 커클랜드)은 가격을 내릴 수 있지만, 가격에서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제품들(ex. 명품, 컨템, 나이키 등)은 가격을 내려버리면 자칫 브랜드의 가치를 녹여버릴 수 있다.
명품도 예외는 아니다. 2010년도 초에 구찌가 잘못된 유통과 오락가락한 가격정책으로 브랜드가 휘청거렸다. 그렇다고 할인하지 않아야 할까? 그러면 재고가 쌓이게 되고 회사의 현금 흐름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글의 제목대로 상승된 가격의 역습(Price strikes back)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방법 그리고 누구나 아는 방법, 하지만 가장 두려운 방법
가격을 내리지도, 할인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선택할 방법은 단순하다. 수요를 지속적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그 정도 가격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하나라도 더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홍콩에서 진행한 루이비통 남자 패션쇼를 보면 지난번 파리에서 진행한 것처럼 화려하게 꾸며 사람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수요에 민감한 명품회사이기에 더욱더 많은 돈을 써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투자는 비용이 투입되어야만 한다.
앞에 내용을 종합해보면, 결국 재무적인 관점에서 리스크를 가져가야 한다. 수요 창출을 위해서 마케팅 비용을 지속해서 써야 하는데, 이에 비해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서 할인하면 제품당 수익이 줄 수밖에 없다. 투자했는데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면, 곧바로 줄어든 수익을 직면해야 한다.
다시 브랜드 마케팅의 시대로
그래서 브랜드 마케팅이 중요한 시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 가격이 가치 있게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브랜드를 계속해서 의미 있게 재창출해야 한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1~2년 전, 모든 마케팅이 SNS에서 이루어지고 타겟 마케팅이 유행하면서 CMO(Chief Marketing Officer/최고 마케팅 책임자)의 필요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그런데, 다시 브랜드 마케팅이 중요한 시기가 찾아오다니!
브랜드 마케팅을 꾸준히 잘하고 있는 룰루레몬(Lululemon)을 보면 주식 시장에서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고, 호카(Hoka)와 브룩스(Brooks) 역시 마찬가지다. 다우존스(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형주 30곳을 묶어서 발표하는 주가지수)가 2023년 11월까지 약 9% 올랐는데 룰루레몬은 40%, 호카가 속한 덱커스(Deckers)는 70% 이상 상승했다. 브룩스의 매출은 흔들리지 않고 상승 중이다.
반면, 브랜드 마케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VF 그룹은 같은 기간 35%나 하락 했다. 슈프림(Supreme)을 인수했고, 아웃도어 열풍에 선봉장이 될 수 있는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를 가지고 있고, 떠오르는 스포츠인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압도적인 반스(VANS)를 가지고 있지만 VF 그룹은 추락 중이다. 브랜드 마케팅을 안 하고 어설픈 유통 전략을 펼친 올버즈(Allbirds)는 상폐 위기에 있다.
불황은 도덕적이며 물리적인 봄맞이 대청소 시기
세상은 돌고 돈다는 상투적인 표현보다는 앞으로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가격의 역습(Price strikes back)시대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냉정하게 자신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샤넬의 전설, 칼 라커펠트(Karl Lagerfeld)는 경기침체에 대해 “도덕적이며 물리적인 봄맞이 대청소 시기일 뿐”이라고 했다. 불황의 시대에 앞서 우리는 어떤 대청소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
I see it like a cleaning up – it was too rotten anyway – so it had to be cleaned up. I see it like a healthy thing – horrible but healthy, like some miracle treatment of the world.”
칼 라커펠트(Karl Lagerf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