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이 리테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Retail business in high inflation era
최근 물가 상승에 관한 뉴스가 정말 많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인 8월 말, 미 연준(연방준비제도, 미국의 중앙은행) 의장 제롬 파월(Jerome Powell)의 발언으로 나스닥은 4%가 넘게 빠졌다.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했다.
물가 상승은 미세먼지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부분 중 하나가 노동 시장인데, 전 세계가 그동안 전례 없던 변화를 짧은 시간 내에 겪었다. 서비스 산업군인 리테일 비즈니스는 이러한 격동의 시대 변화 속 한 가운데 있다.
스위스의 금융기관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의 투자 전략가 졸탄 포자르(Zoltan Pozsar)의 보고서 ‘War and Interest Rate’는 이러한 노동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물가 상승이 리테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 Retail Business in High Inflation Era을 풀어본다.
지난달인 8월에 이 글이 작성 되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노동력은 비용이지만 수요를 창출하는 소비자의 또 다른 이름
리테일 비즈니스(이하 ‘리테일’)에 있어서 노동력은 투입되어야 하는 비용이지만, 반대로 수요를 창출하는 소비자기에 노동력의 구조적인 변화와 인식의 전환을 기민하게 파악해야 한다.
아래 그래프는 일반적인 가구가 가지는 평균 임금과 물가와의 관계이다. 2년이라는 기간을 놓고 보면 일 년에 한 번(주로 연말) 임금이 오르고, 물가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가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가가 매우 급격하게 오르고 있으며, 이렇게 한 번 오른 물가는 쉽게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물가 상승률은 줄어들 수 있으나, 절대적인 상승한 물가의 규모가 줄어들지는 않는 것이다. 이 현상을 리테일 비즈니스에 접목해서 살펴보자.
소비자, 줄어든 구매력
소비자 관점에서 물가가 상승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현금 흐름, 즉 구매력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주머니의 현금이 줄어들면(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을 의미하는 의식주 중, ‘식(食)’과 ‘주(酒)’에 나가는 비용이 우선시되고 ‘의(義)’에 나가는 비용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현금 흐름을 지금과 같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현금 흐름을 원활하게 바꾸면 된다.
다른 방안으로는 수입을 새롭게 만드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재테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부른다. IMF 이후에 출판 업계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콘텐츠가 재테크이며, 이는 유튜브에서도 다를 바 없다. 요즘 유행하는 N잡러, 부캐, 사회2막 이런 용어들의 뿌리가 바로 재테크다.
하지만 추가 현금을 창출하는 것이 기존의 현금 흐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코로나 이후에 생긴 플랫폼 경제 활동을 통해서 추가 수입을 창출하면 되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첫 번째, 배달/배송 같은 경우 이미 많은 사람이 전문적으로 일하고 있기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3~4시간 주말이나 주중 저녁에 일하고 최저 임금과 비슷한 보수를 받으면서 쉬지 못하면, 결국 본업에 영향이 생기게 되고 기존의 현금 흐름까지 위협할 수 있다.
두번째, 리셀(resell)과 병행 수입, 스마트 스토어 같은 중개 업자로서의 소득이다. 환율이 안 좋아서 병행 수입은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이며, 스마트 스토어는 매우 포화한 시장이다. 코로나 시절의 자본 시장에 흘러넘쳤던 유동성이 스니커즈 리셀 시장까지 들어와 많은 사람이 스니커즈를 투자의 대상으로 사고팔았다.
여기에 법규제가 없다 보니 특정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부축임 등으로 거품이 생겼고, 자본 시장이 빠르게 식어가고 브랜드에서 물량을 쏟아내면서 리셀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진은 매우 제한적으로 되었다. 플랫폼 경제로 장기적으로 추가적인 현금 흐름을 가져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리테일 기업, 늘어나는 임금 떨어지는 효율
물가 상승으로 인해서 인건비 상승 압박이 있는 것은 모든 기업이 같다. 특히, 많은 노동력을 운영해야 하는 리테일 비즈니스는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리테일에서 발생하는 인건비는 ‘❶-소비자와 대면하는 직무, ❷-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직무’에서 비용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①-기술 혁신, ②-효율성 강화’ 이렇게 2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1 – 소비자와 대면하는 노동력
최근 오프라인 스토어를 방문하면 키오스크(KIOSK) 기기가 많아졌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매장을 운영하는 업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서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키오스크를 선택했지만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다.
당장 계산원를 줄임으로서 단기적으로 비용적인 측면에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지만,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의 불편이 매장 입점 고객의 축소로 이어질까에 대한 걱정이 따라온다.
다음으로는 셀프 계산대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도입이 시작되었으며, 계산원을 대체하면서 전체 매장 인력 효율을 높인다고 생각했었다. 아마존에서는 무인 매장(Amazon GO, Amazon Go Grocery, Amazon Fresh Grocery)을 만들고 자동 결제하는 시스템까지 선보이면서 미래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사(링크 1, 링크 2)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각보다 셀프 계산대 자체가 편하지 않다. 미국에서도 셀프 계산대에서 2/3 이상이 실패하는데, 계산대에서 이것저것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한국은 생각보다 그 효율이 더 떨어질 것이다.
이런 기술혁신도 고객 응대가 상대적으로 중요해지는 매장에서는 쉽게 사용하지 못한다. 스타벅스조차도 사이렌 오더로 주문량이 늘어나도 스태프에게 주문받는 것을 교육하는 이유는 매장에서 직원의 미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2 – 매장의 운영에 관련된 노동력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매장의 운영은 크게 물건을 이동하는 것과 적재하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물건을 이동하는 건 물류 기술 혁신으로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창고에 적재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하기에 노동력이 여전히 필요한 영역이다.
물류 창고에서 물건을 이동하는 것은 로봇이나 설비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택배 상하차와 같이 물건을 적재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르므로 대처 되는 건 시간문제다, 슈트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이 상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문제는 현장에서 숙련된 노동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현장을 떠난 숙련된 노동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미국 노동 시장에 미친 영향이 현장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없애 버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수많은 숙련된 노동자는 코로나 때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났다. 그 사이에 임금은 계속 올랐고, 최근과 같이 노동력이 부족한 시점에서는 예전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신입 직원을 써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규 직원을 빠르게 숙달시킬 수 있는 것은 숙련된 노동자인데, 그들이 현장에 없으니 기업은 더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더 낮은 효율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가속화되는 소비 양극화
사실 이 모든 비효율적인 것들과 비즈니스의 장애물들은 매출이 잘 나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출이 빵빵 터지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 하지만, 보고서에서도 언급되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기는 지금까지 잘 보지 못했던 경기 침체 국면 즉, 소비자들이 펑펑 쓰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근래 독일의 소비가 8% 감소한 것은 지금의 물가 상승이 얼마나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면이다. 리테일 비즈니스의 비용 중에 비중이 큰 노동력에서의 비효율성은 심해져 가고 있고 해결책도 뚜렷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생산단가도 올라가는 시점에서 재무적인 효율성을 추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미 멋들어지는 소비를 경험해 봤다.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부자가 됨을 느끼고 소비의 고급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한 번 올라간 고급화된 소비자들은 쉽게 그 기준을 낮추지 못한다. 허세 인플레이션(실제로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유해 보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인플레이션처럼 급등하고 있다는 의미)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우리가 NBA를 보다 보면 KBL을 보기가 힘들어진다. MLB를 보면 KBO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NBA가 글로벌 확장을 OTT를 통해 쉽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경기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전 세계 농구 팬들은 자국 리그보다 NBA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물가 상승으로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비 수준을 올라갔기 때문에 앞으로 소비자들은 더욱더 자신이 사고 싶은 것에 집중해서 소비할 것이며, 소비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돈을 아껴서 명품을 사고,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은 더 저렴한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다시 마케팅으로
마케팅이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모든 것이 수치로 나타나기에 CMO(Chief Marketing Officer, 최고 마케팅 책임자)가 필요 없다거나 데이터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로는 소비자 경험을 고도화시켜 구매 전환율을 높일 수는 있어도 마음마저 사로잡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입점 고객이 100명인 매장에 고도화된 시스템으로 구매 전환율이 30%에 육박하는 매장과 입점 고객이 1,000명인데 운영 미숙으로 구매 전환율이 5%인 매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즉, 고객이 1,000명이 일단 들어와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데이터가 풍부하고 엄청나게 고도화된 소비자 경험을 만들어도 고객 수가 적으면 큰 효율을 내기 힘들다.
결국 리테일 회사는 마케팅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의 시기에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있도록 유혹하고 절약하는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결국 마케팅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때다.
80년대 미국 경제가 안 좋았을 때가 마케팅의 전성기였던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시기가 그리고 지금이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