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은 어떻게 시장을 지배하는가 How the Cream Rules the Market
신발, 거 돈 됩니까!
최근에 문득 크림 앱(KREAM)을 생각보다 꽤 자주 켠다는 것을 느꼈다. 신발을 살 것도, 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크림은 상품검색-구매, 상품정산-판매 서비스 제공뿐 아니라 자체 콘텐츠도 상당히 풍부해진 앱이 되었다. 일단 상품을 찾기 쉽도록 분류해놓은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고, 다양한 주제별 큐레이션도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또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관심 제품에 대한 스타일링 팁도 얻을 수 있다. 단순 리셀 앱에서 벗어나 트랜드 파악, 시세 확인은 물론 커뮤니티도 즐길 수 있는 버티컬 커머스 앱으로 성장한 것이다.
객관적인 수치도 이를 보여주는데, 2020년 3월에 등장한 크림은 작년 기준 MAU 400만 명을 돌파했고, 수수료를 무려 7번 인상했음에도 연간 거래액은 약 1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충성도 높은 2~30대 이용자를 바탕으로 국내 리셀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크림, 내 손주다
알다시피 크림은 국내 굴지의 IT 대기업인 네이버의 손주이자, 앱 서비스 개발/운영의 명가 스노우의 자랑스러운 자식이다. 모바일 사업 DNA를 물려받은 것은 물론, 진도준(《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의 분당 땅처럼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받았다.
물량
우선 리셀 앱의 본질은 거래. 사람들은 다양한 상품을 찾아 적절한 가격에 거래하고 싶어 한다. 그만큼 많은 상품과 거래량이 필수 요소다. 특히 리셀 또는 중고거래는 거래 특성상 일반 커머스에 비해 시간이 소요되어 물량이 없다는 건 리셀 앱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크림은 거래량에서 단순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기타 서비스들을 압도한다.
거래량이 많다는 건 내 물건을 살 사람이, 그리고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수수료에 대한 허들도 낮춰준다. 수수료가 들지만 크림에서만 거래할 수 있으니 혹은 크림에서 거래하는 게 빠르니 크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업 초반, 시장 점유를 위한 막대한 재정 지원이 큰 도움이 된 건 분명한 사실(근데 왜 같은 재벌집 아들인 솔드아웃은….).
가격 경쟁력
거래량이 많다는 건 또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장가가 형성된다는 의미다.
어느 순간 패션 상품을 검색할 때 우선 크림에서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거래량을 확인하고 적절한 시세가 어느 정도 선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제품은 아닐 터이니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라면 크림의 가격이 곧 기준이 되는 셈이다. 그 후 디깅을 통해 더 낮은 가격과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구매하면 된다. 하지만 돌고 돌아 합당한 가격과 검색의 편리함, 그리고 확실한 검수 때문에 대부분은 크림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크림은 지금까지 상품을 찾아 일일이 발품을 팔던 소비자들에게 객관적인 가격 기준을 제시한다. 풍부한 DB와 많은 이용자 수 덕분일 것이다. 게다가 이제 네이버 쇼핑에서도 크림의 가격을 찾아볼 수 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말이다.
콘텐츠
눈에 띄는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큐레이션. 다루는 상품 카테고리가 많아지다 보니 다양한 큐레이션이 가능해졌다. 앱의 메인에는 기본적으로 약 열 개의 주제를 바탕으로 관련 상품들을 보여주는데 날씨, 기념일, 트렌드, 브랜드, 테마 등 다채로운 추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번째는 커뮤니티. 이용자는 이 공간을 자신의 패션 포트폴리오로 활용한다. 크림에 등록된 상품을 태그하여 자신이 해당 상품을 얼마나 잘 활용하여 코디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댓글을 통해 코디나 사이즈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남긴다. 그리고 자신의 SNS도 홍보하며 신규 팔로워를 모으는 창구로도 활용한다.
이런 자체 콘텐츠들은 자연스럽게 이용자를 앱에 더 오래, 자주 머물게 하고 구매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최근에는 단독 브랜드 관도 열어 4개월 만에 40여 개 브랜드가 입점해 한정, 단독 상품들을 판매하며 얼어붙은 리셀 시장에서 새로운 활로 개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마지막은 크림의 ‘보관 거래’다. 보관 판매는 실제 거래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매자가 크림에 제품을 발송해 검수를 마친 후, 물류창고에 상품을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입찰을 통해 거래가 성사되면 상품이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구매자는 판매자의 배송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빠르게 상품을 받을 수 있고, ‘창고 보관 구매’를 선택하면 상품을 구매했더라도 직접 배송받지 않고 바로 크림에 보관해둘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품의 이동 없이 거래만 성사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크림의 상품들은 재화에서 금융 파생상품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관 거래가 시작된 후 거래량이 급증하고 특정 상품의 가격이 치솟았는데, 수수료 무료 이벤트 기간에 적립금과 포인트를 노린 리셀러들의 자전거래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리셀러들이 여러 계정을 이용해 스스로 사고팔아 이득을 얻고 제품 가격까지 끌어올려 일종의 ‘시세조종’ 행위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예년만 못한 리셀 시장에서 크림은 자신들만의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능은 거래량을 늘려 몸값을 올리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기도 하다.
눈이 좋은기가, 운이 좋은기가
네이버 할아버지는 글로벌 C2C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일본, 싱가포르, 태국,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의 리셀 플랫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고, 북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인 ‘포시마크(Poshmark)’를 1조 6,700억 원에 인수했다. 분명 막내 손자를 통해 비즈니스의 기회를 보았으리라.
크림의 다양한 큐레이션, 풍부한 DB, 믿을 수 있는 검수는 이용자가 크림을 꾸준히 이용하게 했다. 이제 단순 스니커즈 리셀을 벗어나 어엿한 버티컬 커머스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는 크림을 보면 진양철 회장마냥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Kicks Rule Everything Around Me’란 야망 있는 이름을 가진 이 동포 청년이 과연 눈이 좋은지, 운이 좋은지 어디까지 성장할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