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 로쿠 Camper Roku
이번달인 3월 초, 스페인 태생의 캐주얼 신발 브랜드 캠퍼가 6개의 모듈로 구성한 새로운 형태의 신발 로쿠(Camper Roku)를 선보였다. 재활용 소재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구성된 로쿠는 캠퍼의 지속가능한 패션에 관한 연구의 결과물로 약 2년의 연구과정을 거친 제품이다.
캠퍼가 새롭게 내놓은 신발 로쿠(ろく)는 일본어로 여섯(6/Six)을 뜻한다. 6개의 모듈로 구성된 신발을 그대로 드러낸 이름인데, 제품 자체에도 일본풍의 텍스처 느낌이 살아있다. 단순함과 기능성만을 살리는 컨셉인데 51%의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사용했기에 기업의 친환경적인 행보를 엿볼 수 있다.
6개로 구성된 모듈 구조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이론적으로 손상된 부품을 분리하고 교체한다면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착용이 가능한 신발이다. 다양한 소재와 접착제의 사용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제품 중 하나인 신발을 벗어난 실험작 중 하나다.
모듈 형태의 신발 실험
신발은 다양한 소재와 접착제의 사용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제품 중 하나로 불명예를 안고 있다. 우리가 즐겨신는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 하나 제작에 참여하는 공급사와 제작사 20~30개가 붙어야 만들수 있고 사람의 손이 필수로 거칠수 밖에 없는게 현재의 신발 제작방식이다.
그런데 이를 완전히 180도 뒤집어 접근한 방식이 바로 모듈(Module) 형태의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표준화된 조각을 만들어 조립과 해체가 가능하고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방법인데 쉽게 말해 장난감 레고(Lego)를 떠올리면 된다. 효율성으로 따지면 괜찮을법한 이 방법은 지금까지는 하나의 실험이자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로 컨셉 스케치 혹은 졸업 작품 정도로만 볼 수 있었다.
가까운 예로, 163번째 슈톡 뉴스레터에서 소개한 스위스의 로잔예술대학(ECAL)의 Robin Luginbühl’s의 졸업 프로젝트 Disassembly Lab 스니커즈를 볼 수 있다. 3D 니트와 교체가 가능한 미드솔을 활용한 신발로 각 부품과 요소가 모듈 형태로 제작되어 교체와 수리, 재활용까지 가능한 컨셉이다.
캠퍼의 로쿠와 상당히 비슷한데 다양한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모듈 형태의 방법론을 적용한 신발이기에 그렇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더 다양한 모듈형 신발을 볼 수 있을테다.
업계의 도전
기업 입장에서 기술의 한계, 상품성, 거의 완벽하게 뿌리 내리고 크게 바뀔 필요성도 적은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과 제조 방식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작은 변화라면 지속가능성 패션과 ESG 경영을 외치는 요즘의 트렌드에 맞춘 결과물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는 정도일까.
2020년 나이키는 공장 바닥에서 주운 플라스틱 병, 폐의류, 원단 자투리 등을 우주 쓰레기(space junk)라 칭하고, 여기에 기타 재활용 제품을 섞어 우주쓰레기 실(space waste yarn)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신발 스페이스 히피(Space Hippie)를 선보였다. 나이키 제품 중 탄소발자국(CO2 배출량) 점수가 가장 낮은 제품 중 하나로 상당히 멋진 디자인과 제조방식과 컨셉이 고루 갖춘 신발이었다.
아디다스는 글로벌 해양 환경보호 단체 팔리 포 더 오션(Parley for the Oceans)과 협업해 해양 폐기물을 재활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제작된 신발만 1천만 켤레를 넘었고, 단일 소재로 사용해 사용 후 폐기 및 100% 재생이 가능한 퓨처크래프트 루프(FUTURECRAFT.LOOP)을 선보인 바 있다.
기업 공개 이후 93% 이상의 주가 하락을 보여준 올버즈(Allbirds)는 친환경 신발로 유명하며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을 전부 공개했다. 비건 운동화를 만드는 베자(Veja) 역시 생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친환경 재료와 공정거래 준수 등을 내세운다.
국내외 브랜드를 포함하여 리사이클링을 내세우는,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찾기 힘들다. 이제는 제품 상세 설명 페이지의 한 꼭지는 생산자의 친환경적인 행보를 나열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Less is Roku, Roku is limitless
이제 스페인 신발 브랜드 캠퍼가 2년간 진행한 프로젝트 로쿠(Camper Roku)로 다시 돌아와보자. 캠퍼는 정장에서부터 캐주얼에 어울릴만한 매우 다양한 카테고리의 카탈로그를 갖추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은 브랜드다. 써네이(SUNNEI),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 아더 에러(Ader Eror), 버나드 월헴(Bernhard Willhelm) 등 다양한 파트너와의 협업의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캠퍼 신발 자체 디자인이 좋고 착화감도 준수해 주변의 어르신도 충분히 만족해하며 종종 구매하신다. 비록, 국내에 수입되면서 비싸지고(김치 프리미엄이 붙은…) 한정적인 모델만 수입되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캠퍼 로쿠의 국내 발매가격은 388,000원이고 8가지 모델이 판매중이다. 미국 캠퍼 사이트에서는 $210의 가격이며 색이 섞인 커스텀된 로쿠 모델이 판매중이다. 추가적으로 어퍼와 이너삭스, 인솔과 아웃솔 모두 별도로도 구매 가능한데 이게 바로 모듈 형태의 구조를 지닌 로쿠 신발의 장점이다. 국내에서는 그런 컨셉을과 특장점을 전혀 살릴 생각이 없어보여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재고 관리 이슈가 클테지만.
이미 지난 3월 9일부터 14일 이태원에서 로쿠 팝업 스토어 ROKU by Camper가 있었다. 신상품인 로쿠 스니커즈를 선보이고 커스터마이징 체험(30분)까지 함께했었는데 이미 행사 종료가 1달이 지난 시점에야 알게된 정보라 아쉬웠다.
아래의 로쿠 신발 교체 영상을 보면 이 신발의 컨셉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모듈 부품을 교체하고 결합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지구환경 보호를 실천하는셈이니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대부분의 스니커헤드는 리사이클링을 앞세워 심심하고 지루한 디자인의 신발보다는 캠퍼 로쿠(Camper Roku)와 비슷한 수준의 완성도와 디자인을 갖춘 신발을 원한다. 캠퍼 로쿠(Camper Roku)는 철학과 디자인의 비율이 매우 적절한 사례로 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