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조던 1이 최고의 운동화가 되기까지 How Air Jordan 1 Became the Best Sneaker
현재 운동화 문화에서 가장 인기 모델이자 근본 중의 근본이라 일컫는 에어 조던 1(Air Jordan 1). 하지만 처음부터 그리고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5년 첫 발매 이후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며 에어 조던 1이 최고의 운동화가 되기까지(How Air Jordan 1 Became the Best Sneaker) 그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화려한 데뷔
1984년 10월, 나이키는 NBA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 소속의 신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계약을 맺었다. 당시 농구화 시장에서 약세였던 나이키는 에어 조던을 성공시키기 위해 매우 공을 들였다.
디자이너 피터 무어(Peter Moore 에어 조던 1과 덩크 그리고 아디다스 EQT 등의 디자이너로서 얼마 전 타계하여 많은 운동화 팬들이 슬퍼했다)는 놀라운 체공 시간이 돋보이는 마이클 조던의 움직임과 모델명 에어 조던(Air Jordan)에서 영감을 받아 출장 중 비행기에서 항공사 로고로부터 착안해 윙 로고를 만들었으며, 신발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디자인하여 더욱 화려한 색상들을 적용할 수 있게 하였다.
당시 NBA의 농구화는 팀원들이 색상을 맞춘 하얀색 바탕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신발뿐만 아니라 마이클 조던이 비행기 이륙 소리와 함께 덩크를 하는 TV 광고와 활주로의 비행기와 함께 지면광고를 촬영하는 등 독특하고 세련된 광고들은 미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1984년 연말부터 조던의 활약에 힘입어 그가 신은 신발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5년 2월 NBA 사무국에서 브레드(Bred: Black+Red 검빨) 색상의 착용을 금지한 사건을 활용한 광고는 반항적인 이미지와 함께 당시 젊은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사실 착용 금지 요청을 받은 모델은 에어 쉽(Air Ship)이었지만 신발이 아닌 색상을 금지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이키는 영리하게 이 사건을 1985년부터 현재까지 에어 조던 1 마케팅에 적용해왔다(Sole collector, The True Story Behind the Banned Air Jordan). 이후 1985년 봄 에어 조던 1이 발매되었으며 조던의 활약에 열광하던 이들은 그가 신는 신발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84-85 시즌 코트를 종횡무진한 조던은 신인상을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으며, 나이키 또한 엄청난 한 해였는데, 1족에 65달러인 에어 조던 1(Air Jordan 1)과 의류 등을 포함한 에어 조던 제품군에서 무려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참고로 1984년 나이키 전체 매출이 6,500만 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성과다.
조던과의 계약 당시 지금처럼 크지 않은 규모의 나이키는 250만 달러와 판매 수익에 따른 로열티 등 신인에게 파격적으로 제안하며 기업 차원에서 승부를 걸었는데, 다행히도 기대 이상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결국 나이키는 불안감을 털어버리고 브랜드 이름인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 함께, 로고인 스우시(Swoosh) 모양 같은 아주 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인기
1986년 시즌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이클 조던은 부상을 입게 된다. 에어 조던 1(Air Jordan 1) 또한 높은 인기에서 비롯된 많은 색상과 추가 생산으로 인해 재고가 너무 많아져, 할인된 가격표가 달린 채 판매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될놈될”이라고 했던가? 저렴해진 가격 덕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수요가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튼튼하고 저렴한 신발을 찾던 스케이트보더들이었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스케이트보드화로 유명한 반스(VANS)는 재정 상황이 나빠져 1984년 파산하고 마는데, 이 때문에 반스의 신발은 시장에서 보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케이트보더들은 반스의 대안을 찾고 있었고, 마침 할인가로 저렴해진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에어 조던 1의 가죽 갑피와 고무 창은 사포로 만들어진 그립 테이프(Grip Tape)에 대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고, 높고 두툼한 발목은 안정적인 지지를 제공하였으며 얇은 신발창은 보드를 잘 느끼고 다룰 수 있었다.
게다가 착용 금지되었던 브레드 색상으로 알려진 반항 정신은 스케이트보더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스케이트보드의 전설인 토니 호크(Tony Hawk)와 랜스 마운틴(Lance Mountain) 등이 속했던 스케이트보드 팀 본즈 브리게이드(Bones Brigade)가 에어 조던 1을 착용하고 《서치 오브 애니멀 친 The Search for Animal Chin》이라는 스케이트보드 영상을 제작한다.
이 영상은 1987년 비디오 테이프로 미국 전역에 퍼지며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스케이트보더들 사이에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2014년부터 스케이트보드와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에어 조던 1 SB 모델들이 발매되고 있다.
첫 번째 레트로 그리고 그 이후
마이클 조던은 90-91 시즌부터 시카고 불스의 NBA 3연패를 달성하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1993년 여름 2인조 강도로부터 조던의 아버지는 잔혹하게 살해되어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되고 만다. 더욱 비참하게도 범인들이 10대 조던 팬이었으며 범행 동기가 운동화를 사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던은 큰 충격을 받고 농구에 대한 의욕을 잃게 되어 결국 첫 번째 은퇴를 하게 된다.
다음 해인 1994년 에어 조던 시리즈 10주년을 기념하여 두 가지 색상의 에어 조던 1(Air Jordan 1 Chicago)이 최초로 레트로 되었는데, 검흰빨 색상의 시카고와 검빨 색상의 브레드(Bred Black+Red)였다. 당시에도 에어 조던 1은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만큼 마이클 조던의 팬들에게 인기가 있었긴 했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경기에서나 일상에서 신기 애매한 구식 농구화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대중들로부터 잠시 외면받았던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은 2001년 다시 레트로가 되는데, 당시 세계 운동화 시장의 주요 지역인 일본에서의 에어 조던에 대한 수요를 감지한 나이키 재팬에서 검빨 브레드와 검파 로열 블루 그리고 3가지의 CO.JP(Concept Japan, 코즙으로 불리는…) 모델을 한정 발매하였다. 007 가방 케이스와 한정 수량이 새겨진 라벨 택은 수집가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1997년 조던 브랜드가 나이키로부터 별도의 회사로 분사했기 때문에 스우시 로고는 점프맨 로고로 대체 되었다.
하지만 같이 발매된 검빨 브레드와 검파 로열 블루 색상은 나이키 에어 로고가 적용되어 레트로 되었는데, 에어 조던 1 검빨 브레드는 국내에서는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 신발로도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
2000년대 초 운동화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패션에서의 유행은 힙합과 스트리트패션이었다. 당시에는 에어 조던 3나 4 그리고 덩크 SB 같은 통통한 모양새의 신발이 인기였으며 상대적으로 날렵했던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은 패션용으로는 크게 인기가 높지 않았다. 당시에는 넓은 통의 바지가 에어 조던 1을 모두 덮어버려서 맵시가 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의 넓은 통의 바지에 에어 조던 1을 신는 유행과는 상반되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후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은 2000년대 중반까지 몇 가지 새로운 색상과 미드컷 모델들이 출시되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2007년 블랙토와 검노 색상의 2가지로 구성된 BMP(Beginning Moments Pack)를 출시했는데 거의 30년 만에 블랙토 색상이 레트로 되었기 때문에 조던 팬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2009년 DMP(Defining Moments Pack)에는 검흰초 셀틱(Celtics) 색상과 함께 검빨 브레드 색상이 오랜만에 레트로되어 또한 인기였다. 하지만 이들은 일부 에어 조던 수집가들의 관심만 받았을 뿐 여전히 스니커 시장과 패션계에서 에어 조던 1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후 2010년 하반기에 전 세계 에어 조던 팬들을 흥분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나이키 에어 로고가 적용되고 뒤꿈치에 밴드(Banned)를 상징하는 X 표시가 그려진 에어 조던 1 브레드 색상의 유출 사진이었다. 10여 년간 줄곧 점프맨이 그려져 발매된 에어 조던 1이 아쉽지만 익숙해질 때쯤, 나이키 에어와 스우시 로고가 적용된 에어 조던 1의 발매 소식에 전 세계의 조던 팬들은 크게 열광하였다.
마침내 에어 조던 1 밴드는 2011년 6월 미국 아울렛 매장에서만 한정 발매되었고 유출부터 발매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운동화 팬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대폭 키워주었다.
패션으로의 진입과 시작된 열풍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에어 조던 1은 마이클 조던과 에어 조던 신발 자체에 향수가 있는 오래된 팬이자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에어 조던 1이 지금처럼 패션계와 대중들로부터 본격적인 사랑을 받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그 시작은 다양한 시도로 스트리트패션과 럭셔리 하이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인 前 칸예 웨스트(Kanye West)/現 예(Ye)의 행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2011년 에어 조던 1 밴드 발매의 영향이었을까? 칸예 웨스트는 2011년 런던 패션 위크에서 당시 패션 위크에서 격식을 갖춘 구두가 아닌, 에어 조던 1 브레드 2001년 레트로를 신고 등장해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2012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는 턱시도 자켓에 에어 조던 1 브레드를 착용한 모습을 보여주며 패션계에 큰 이슈를 낳았으며, 이후 다른 해외 힙합 뮤지션들과 유명인들 또한 에어 조던 1을 신은 모습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중들에게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이 이슈되어 인기가 오르고 있던 2013년 나이키는 승부수를 띄운다. 바로 에어 조던 1 오리지널 색상들의 대대적인 레트로 발매가 시작된 것이다. 연초 발매된 시카고 색상은 아쉽게도 점프맨 로고가 쓰였지만 이후 발매된 로얄 블루에 나이키 에어 로고가 적용되었고 이후 블랙토와 쉐도우의 발매에 이어 연말에는 브레드 색상을 발매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2013년은 에어 조던 1(Air Jordan 1) 뿐만 아니라 3, 4, 5, 8, 11, 12, 13 등 여러 오리지널 넘버링의 오리지널과 새로운 색상의 수많은 발매를 통해 에어 조던 전 시리즈의 인기가 높아지게 되었고 국내에서는 지드래곤, 빈지노, 고준희 등 여러 연예인이 신으며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아지게 되자 국내에서도 운동화 리셀(Re-Sale)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4년 또한 앞서 얘기한 스케이트보드와의 이야기를 담은 에어 조던 1 SB 모델들이 첫 발매되고 검흰 컬러의 덩크 이전 원조 범고래인 에어조던1 검흰 등 여러 모델들을 발매하며 인기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2014년 연말 에어 조던 1에 있어서 중요한 모델이 발매되는데, 일본 스트리트 패션계의 대부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의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과의 협업 모델 이었다. 에어 조던 1의 첫 협업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발의 설계를 1985년 오리지널 모델과 가깝게 “리마스터링(Re-Mastering)”한 것이었다.
에어 조던 1 프라그먼트는 당시 에어 조던 수집가들과 더불어 패션계 및 대중들에게 또한 큰 이슈가 되었으며 발매 직후 높은 인기와 리셀 가격을 자랑했다. 그리고 나이키에게는 앞으로 발매될 수많은 에어 조던 1 협업 모델과 보다 오리지널에 가까운 설계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패키지 등 수많은 제품 확장 그리고 가격 인상(…)의 시작이었다.
이후 2016년 또 한 번의 대대적인 오리지널 색상의 레트로 발매와 함께 2017년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더텐 컬렉션(Virgil Abloh and Nike “The Ten”) 모델로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변경되어 발매되었고, 이후 2019년 커다란 역방향 스우시 로고가 돋보이는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와의 협업 모델이 발매되었으며 이후 후지와라 히로시까지 참여한 3자 협업 모델까지 발매되었다.
2020년에는 명품 브랜드 디올(Dior)과의 협업 모델 이 300만 원의 가격으로 발매되어 큰 이슈를 낳았으며, 2021년 마이클 조던의 아들 마커스 조던(Marcus Jordan)이 운영하는 편집샵 트로피룸(Trophy Room)과의 협업 모델을 발매하는 등, 제품의 에너지를 키워가며 운동화를 넘어 하나의 오브제로써 수집품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오리지널 색상과 협업 모델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상의 하이, 미드, 로우 모델들을 발매하였고 많은 대중이 즐겨 신게 되어 길거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인기 모델이 되었다.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엔 넌 변했지’라는 노래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초기 국내 에어 조던 열풍에 한몫했던 지디의 노래 《삐딱하게》의 가사다. 유행은 변하기 마련이다. 2013년경부터 높았던 에어 조던 시리즈의 인기는 현재 에어 조던 1을 제외하고는 다소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쳐
오늘밤은 삐딱하게G-DRAGON
, 《삐딱하게》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와 유행 가운데서도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이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한정판 모델과 일반 대중들을 위한 모델 등 여러 수요에 대해 ‘적절하게‘ 공급해준 것이 큰 요인일 것이다. 또한 오리지널 색상과 리마스터링, 에어 조던의 첫 번째 모델로써 ‘근본‘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2020년 4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인 《더 라스트댄스 The Last Dance》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마이클 조던의 경기를 보며 자라온 이들에게는 향수를, 마이클 조던을 잘 몰랐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마침, 코로나 19로 인해 스포츠 경기 생중계는 중단되었고, 집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댄스 The Last Dance》는 최고의 대안이자 콘텐츠 아이템이었다. 마이클 조던의 팬들로부터 시작된 인기는 순식간에 퍼져 운동화 팬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다큐멘터리의 성공과 함께 스탁엑스(StockX) 등 운동화 거래 플랫폼에서 조던 모델의 거래량은 급상승하였고 작품에서 등장한 에어 조던 1 시카고 색상은 특히 그 인기와 시세가 더욱 높아지며 근본 중의 근본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였던 90년대 초 중반에 그의 경기를 보며 10대를 보낸 1980년생들, 소위 말하는 ‘조던 키드’들이 경제력을 갖추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레트로가 시작된 에어 조던 1은 2010년대에 들어 대중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며 이른바 ‘조던 광풍’을 이끌었다.
그 후로 유입된 10대들을 포함한 다양한 운동화 팬들은 또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에어 조던에 열광하고 있으며 현재의 10대들 또한 에어 조던에 열광하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에어 조던이 가진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위대한 업적을 세운 마이클 조던이라는 선수의 땀과 그 업적들을 멋지게 상품화시킨 나이키의 노력 그리고 그 팬들의 사랑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출처/참고
https://solesavy.com/how-the-2011-air-jordan-1-banned-shifted-sneaker-culture/
https://www.nicekicks.com/the-time-kanye-wore-jordans-to-paris-fashion-w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