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에어 맥스 1의 탄생 비화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나이키 에어 맥스 1의 탄생 비화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에어 맥스 1 35주년 그리고 탄생 비화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1987년 첫 발매 이후 운동화 업계와 대중들에 큰 영향을 끼치며 나이키의 대표 모델로써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에어 맥스 1의 탄생 비화(Behind the Birth of AIR MAX 1)에 대해 알아보자.

올해 35주년을 맞이한 나이키 에어 맥스 1이 작년 가을 네덜란드 편집샵 파타(Patta)부터 그리고 원앙을 주제로 만든 국내 편집샵 카시나(Nike Air Max 1 x Kasina ‘Won-Ang’)까지 대대적인 협업을 진행하며 제품의 에너지를 키우고 있다.

게다가 1986년 소량 생산되어 에어 맥스 1(Air Max 1)의 오래된 팬들에게 성배로 여겨지는 빅 버블(Big Bubble)의 레트로까지 예정되어 화제다.

나이키 에어 맥스 1의 탄생 비화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나이키 에어 맥스 1의 탄생 비화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작아진 시장과 늘어난 경쟁자들

육상 코치와 선수 출신인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과 필 나이트(Phil Knight)는 1972년 나이키 창립 이후 그들의 노하우와 기술을 적용한 러닝화로 빠른 성장을 이루어냈다. 이 배경에는 당시 미국에 불었던 러닝 열풍으로 인한 큰 수요가 뒷받침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조깅 열풍이 수그러들며 에어로빅 등 실내 피트니스 운동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재빨리 프리스타일(Freestyle) 등의 에어로빅화를 출시한 리복(Reebok)은 곧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나이키의 매출은 둔화하고 있었다.

당시 러닝화 시장은 1970년대 러닝 열풍으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브랜드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었고, 그 중 브룩스(Brooks),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 뉴발란스(New Balance) 등의 안정성이 강조된 제품들은 호평받으며 새로운 기능적 지평을 열었다. 코르테즈(Cortez)로부터 시작된 쿠셔닝에 중점을 둔 기술 개발을 해온 나이키는 시장 내 입지가 줄기 시작했다.


건축가에서 운동화 디자이너로

나이키는 1979년 처음 에어솔을 적용한 에어 테일윈드(Air Tailwind) 출시 이후 1980년 연구개발 시설인 NSRL(Nike Sports Research Lab)을 설립하여 기술 발전을 이루고자 큰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1985년 경에는 기존의 에어솔 보다 부피를 더 크게 만들어 쿠셔닝을 향상하려는 연구 중이었다. 이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사내 디자인 대회를 개최하게 되는데, 1981년 인테리어 및 건축 디자이너로 입사한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 또한 초대되었다.

팅커는 이 대회에서의 성공적인 발표 이후 운동화 디자이너로서 근무할 것을 통보 받았고, 마크 파커(Mark Parker)와 함께 에어 맥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후 이 둘은 수많은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나이키와 운동화 역사에서 중요한 제품들을 만들었다. 마크 파커는 2006년부터 2020년 초까지 나이키 CEO를 역임했으며, 팅커 햇필드는 디자인 및 특별 프로젝트 부사장으로 근무 중이다.

팅커 햇필드와 에어 맥스(Tinker Hatfield & Air Max) /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팅커 햇필드와 에어 맥스(Tinker Hatfield & Air Max)
1980년대 연구 개발하였던 에어 솔의 프로토 타입들(Air Sole Prototype) /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1980년대 연구 개발하였던 에어 솔의 프로토 타입들(Air Sole Prototype)
에어 맥스 1에 사용된 에어 솔(air sole of air max 1) /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에어 맥스 1에 사용된 에어 솔(air sole of air max 1)

파격적인 아이디어와 거센 반발

1985년 파리로 여행을 떠났던 팅커는 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Pompidou)를 방문하게 된다. 미술관으로써 1977년 개장한 퐁피두 센터는 건물에 필요한 구조물들을 외부로 빼내어 노출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논란이 많던 건물이었는데, 개장한 지 8년여가 지났던 만큼 팅커 본인도 방문 이전부터 건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했던가? 직접 건물을 보게 된 팅커는 큰 충격과 함께 영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디자인을 진행하여 1986년 내부 회의에서 에어 맥스 디자인을 발표한다.

당시의 영상을 보면 팅커가 “Why not? Just Show it.”이라고 말하는데, 1988년 시작하여 나이키의 대표 슬로건이 된 Just Do it 캠페인이 떠오른다. 하지만 중창 측면에 구멍을 내어 에어 솔(Air Sole)을 보이게 한 그의 아이디어는 너무나 진보적이라는 의견을 받으며 많은 반발을 사게 된다.

나이키 조직 내부에서는 해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당시 에어 조던 1의 성공에 심취한 회사 분위기 등으로 인해 일부 임원진들이 굉장히 보수적이고 정체되어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팅커의 디자인이 진행될 수 있도록 뒤에서 힘써준 것은 훗날 에어 조던 1과 덩크의 디자이너인 피터 무어(Peter Moore)와 함께 아디다스로 이적하여 아디다스 EQT 라인을 만들고 미국 지사 CEO를 역임했던 랍 슈트라서(Rob Strasser)였다.

Respect The Architects – The Paris Air Max 1 Story Director: Thibaut de Longeville

본격적인 디자인과 명작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팅커 햇필드와 마크 파커는 보이는 에어(Visible Air) 개발과 함께 에어 맥스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진행하였다.

파격적으로 러닝화에 스트레치 메쉬(Stretch Mesh) 원단을 적용했던 1985년 삭 레이서(Sock Racer)에서 영감을 받은 첫 스케치의 갑피는 당시 기술로서는 제작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쿠셔닝과 에어솔에 집중을 하는 것이 마케팅적으로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보다 전통적인 형태의 갑피 디자인으로 진행하게 된다.

여기서 팅커는 또 한 번 대담한 시도를 하는데, 퐁피두 센터의 과감한 색상들에서 영감을 받아 강렬한 빨간색을 갑피 하단에 전체적으로 적용하여 시선을 끌고 중창의 비지블 에어에 눈길이 가게끔 하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첫 번째 스케치의 갑피 디자인은 결국 일부 수정하여 삭 레이서의 후속 모델인 에어 삭(Air Sock)에 적용하게 되었고 이후 에어 플로우(Air Flow)를 거쳐 운동화 핏팅 시스템(Fitting System)에 혁신을 가져온 1991년 에어 허라취(Air Huarche)의 완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에어 맥스의 첫 스케치(air max early sketch)
에어 맥스의 첫 스케치(air max early sketch)
에어 삭과 삭 레이서(Air Sock & Sock Racer)
에어 삭과 삭 레이서(Air Sock & Sock Racer)

에어 사파리(Air Safari)의 스케치를 보면 뒤꿈치 쪽에 AIR MAX가 적혀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비지블 에어 개발 이전에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발등에 조임 장치는(Ratchet Closure)은 마크 파커의 의견이었으나 팅커의 반대로 결국 에어 맥스 1(Air Max 1)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에어 맥스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에어 사파리는 독특한 무늬의 가죽이 특징인 모델로써 팅커 햇필드가 뉴욕의 한 가구점에서 타조 가죽 소파를 보고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고급 가죽과 패션 요소를 운동화에 가미한,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후 팅커 햇필드의 첫 에어 조던 작품인 에어 조던 3의 코끼리 가죽에 영향을 끼쳤는데, 마이클 조던은 자신의 피드백이 세심하게 반영된 에어 조던 3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여 당시 불투명했던 재계약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렇게 에어 맥스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제품들과 에어 트레이너1 등을 포함한 제품들은 1987년 에어 팩(AIR Pack)이라는 패키지로 출시 되었고 부진했던 나이키에게 큰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30여 년 동안 서랍장 깊은 곳에 보관되어있던 에어 맥스의 첫 스케치는 결국 재현되어 2015년 에어 맥스 제로(Air Max Zero)라는 이름으로 발매된다.

참고로 팅커 햇필드가 가장 좋아하는 에어 맥스 모델은 에어 맥스 93(Air Max 93)이라고 하는데, 양말 같은 착용감을 가진 신축성 있는 갑피와 측면과 아울러 후방까지 270도에서 보여지는 에어 솔을 처음 적용하는 등 그가 첫 스케치에서 추구하였던 컨셉을 처음 구현한 모델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에어 맥스 93과 에어 맥스 제로가 비슷한 색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듯하다.

에어 맥스 제로 컨셉 스케치
에어 맥스 제로 컨셉 스케치
에어 맥스 제로 Air Max Zero
에어 맥스 제로 Air Max Zero
팅커 햇필드의 최애 에어 맥스 93
팅커 햇필드의 최애 에어 맥스 93
에어 맥스 93 Air Max 93
에어 맥스 93 Air Max 93

두 가지 버전의 오리지널

에어 맥스 1(Air Max 1)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1986년 연말 첫 생산을 하게 되는데, 당시의 개발과 생산은 세계 운동화 제조의 중심지였던 한국 공장에서 맡았었다. 하지만 제품 테스트 도중 극도로 추운 지역에서 에어백에 손상이 가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빠르게 에어 솔의 크기와 노출되는 면적을 줄이는 등 일부 설계를 수정하여 다시 생산하였다.

정확한 수량과 시기가 알려진 바는 없으나 1985년부터 나이키 쿠셔닝 개발 부서에서 근무해온 데이비드 포를란(David Forlan)에 의하면 1986년 연말 생산을 마치고 1987년 3월 26일 첫 발매 후 몇 개월 동안 수정을 거쳐 재발매하였다고 한다.

초기 모델은 유난히 큰 에어 부분의 모양에서 비롯된 빅 버블 (Big Bubble)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랜 에어 맥스 1 팬들에게 전설의 포켓몬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었는데, 마침내 재현하여 내년에 발매한다고 하니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다.

1986년 생산 에어 맥스 1
1986년 생산 에어 맥스 1 / 1986 AIR MAX 1
1987년 생산 에어 맥스 1
1987년 생산 에어 맥스 1 / 1987 AIR MAX 1

기술 혁신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선수와 대중에게로

에어 맥스 1(Air Max 1)은 파격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주제로 제작된 획기적인 광고들도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부터 현재까지 나이키의 영혼의 단짝이자 광고 대행사인 와이든 케네디(Wieden+Kennedy)는 경쟁사들과 제품 테스트 비교 결과를 직설적으로 실은 지면 광고와 주제와 동일한 제목의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를 사용하여 TV 광고를 제작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팝 음악을 온전히 TV 광고에 사용한 적이 없었고 열렬한 팬들이 있는 비틀즈의 노래를 사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시도였다. 다행히 존 레논(John Lennon)의 아내 오노 요코(Yoko Ono)는 고인이 된 남편의 노래가 광적인 추종자들에게 소비되는 것보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알려지고 그들의 삶에 일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라이선스를 받고 사용을 허가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레코드사들과의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고 다행히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내용의 합의 끝에 이후의 광고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나이키와 운동화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까지 화제가 되어 나이키에게 이득이 된다.

1987 Nike Air ‘Revolution’ TV Advert

Final

이처럼 팅커 햇필드와 나이키는 에어 맥스 1(Air Max 1)의 비지블 에어와 퐁피두 센터에서 비롯된 파격적인 기술 개발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레볼루션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비틀즈의 음악을 사용하여 완벽한 스토리텔링을 이루어 냈다.

팅커가 말하길 이전까지의 운동화들은 단순히 소재와 색상을 조합하는 수준이었으며 스토리텔링을 가진 운동화는 에어 맥스 1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가진 힘은 뛰어난 기능을 원하는 운동 선수들과 비지블 에어에 매료된 대중들 뿐만 아니라, 비틀즈 팬들을 비롯한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수요까지 만들며 5백만 족 이상 판매라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결국 나이키는 북미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하였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에어 맥스 1은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이자 수많은 의미와 가치를 가진 모델로써 여전히 세계의 운동화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에어 맥스 1(Air Max 1) 이후 기술 혁신과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며 에어 맥스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나이키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비지블 에어의 진화 과정 (The Evolution of Visible Air)
비지블 에어의 진화 과정 (The Evolution of Visible Air) / Behind the Birth of AIR MAX 1
2017년 베이퍼맥스(Vapormax) 출시를 기념한 파리 퐁피두 센터 전광판의 광고 영상

참고 자료

「Sneaker Freaker: The Ultimate Sneaker」 Book 217-221p.
「Respect The Architects – The Paris Air Max 1 Story Director: Thibaut de Longeville」
「Abstract: The Art of Design | Tinker Hatfield: Footwear Design | FULL EPISODE | Netflix」
https://www.highsnobiety.com/p/nike-air-max-1-history/
https://www.asphaltgold.com/en/blogs/allgemein/asphaltgold-nike-airmax1-history
https://sneakers-magazine.com/tinker-hatfield-x-sneakers-magazine-interview/
https://unrtd.co/media/pompidou-air-max-day
http://www.thedailystreet.co.uk/2014/03/starting-revolution-tinker-hatfield-air-max-1/
https://blog.klekt.com/nike/behind-the-design-nike-air-max-1/
https://www.sneakerstyle.fr/lhistoire-de-la-nike-air-max-1-0715455.html
https://news.nike.com/news/from-zero-to-1-the-tale-of-the-first-air-max
https://www.designboom.com/design/tinker-hatfield-nike-air-max-zero-03-20-2015/
https://snidehead.blogspot.com/2012/02/air-max-1-history-red-cw.html
https://www.wsj.com/articles/how-mark-parker-keeps-nike-in-the-lead-1446689666
https://qz.com/india/1379328/nike-owes-its-success-to-a-beatles-song-written-in-india/
https://www.runnersworld.com/gear/a20834019/50-years-of-mostly-fantastic-footwear-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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